따스한 순간들

2009. 12. 13. 03:24daily

2009, 안동



1. 글을 포스팅한지 3주가 다 되어가네. 그동안 이런저런 쓸 거리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버튼이 잘 눌리지 않았다. 


2. 그간의 일중 첫번째는 12월 첫째주 토요일에 있던 결혼식.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중간에 몇달 빠진걸 제외하면 4년 조금 넘게 다녔던 회사에서 사내커플이 결혼한다고 해서 대체 어떻게 사내커플이 결혼까지 하나 궁금해서 가봤다. 결혼하는 두 사람 모두 내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 같이 일을 하던 사람들이고, 직접 전화까지 해서 오라고 하기에 가봤다.

사실 회사 다니던 시절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를 같이 다니던 1년여 기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며 내 능력부족을 늘 절감하던 시기였고, 병특으로 다녔던 2002년부터 2004년의 시간은 사회생활이란 어떤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한 직장 생활이라는게 어떤건지 알게 해준 기간이었다. 병특이 끝나고 대학교 복학을 해서 취업준비를 하고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볼때 대화의 밑천으로 삼았던 건 이 회사시절의 경험이었다. 좋건 나쁘건 남들보다 한발짝 앞서갔던 경험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의 유효기간이 더 길다. 회사 사장의 알수 없는 경영철학에 같이 일하는 팀장급의 아는 형에게 이렇게 회사를 운영하면 언젠가는 망할거라는 주제넘은 충고도 종종 하고, 병특이 아닌 직업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를 다니는게 어떠냐는 농담반, 진담반의 철없는 얘기도 종종 하곤 했다. 회사가 하는 작태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이없는 말그대로 '작태'였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찮았고, 난 병특이니 3년만 지나면 도망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잘 지내왔다. 아무튼 이때의 경험으로 회사생활은 왠만해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 다짐은 지금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으니 참 안 좋은 기억밖에 없던 회사생활인것같은데, 결혼식에서 내가 회사 다니던 시작부터 그만둘때까지 같이 다녔던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가 생긴건 1999년 여름이고 내가 일을 시작한건 2000년 봄쯤이었으니 초창기 멤버부터 최근 멤버까지 고루 알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니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즐거운 추억들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내 기억속에는 나쁜 기억이 더 많았던것같은데 사람들의 기억속에 있던 좋은 기억들을 하나둘씩 조합하니 그 시절이 그렇게 나쁜 시절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을때마다 지금 이 좋은 순간을 잘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바보같이 풍경에만 그런 생각을 하고 내 생활 자체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나보다. 사람들과 얘기하는데 잊고 있던 따스한 순간이 싸악 다가와 마음이 뭉클해졌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나중에 지금 회사가 구로디지털단지로 이사왔다길래 꼭 찾아가서 맥주 한잔 하기로 했다. 


3. 그리고 지난주에는 학교 신입생 입학업무로 정신없었다. 서울시내 자사고중 가장 높은 경쟁률. 교장이 10:1 경쟁률을 예상할때는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10.1대 1이라는 기막힌 경쟁률이 나왔다. 원서접수시스템을 개발한 책임때문에 나는 접수기간내내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시달렸다. 

그저 정신없던 시간이었지만 간간히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어린 표정이 보인다. 고등학교 입시면 이 아이들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인생의 관문.  중학교까지는 교육청에서 배정해준대로 입학을 하게 되니 고등학교 입시가 인생에서 최초의 시험이었을거다. 비록 추첨이라는 방식을 택하긴 했지만 그래도 떨어진 아이들은 엉엉 울었고, 붙은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다.


4. 오늘은 노플라이 콘서트를 다녀왔다. 여친님께서 관심을 갖던 그룹이고 난 음악 세네번 들어본게 다였는데 공연을 볼 기회가 생겨서 다녀왔다.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관객들의 성별과 연령대. 압도적으로 여자의 비율이 높았고(90%정도), 또 압도적으로 20대후반-30대초반의 비율이 높았다. 말랑말랑하고 그 계층에 어울리는 음악이라 그랬을거라 생각한다. 

오랫만에 가본 공연이었는데 역시 라이브의 힘을 느꼈다. 음반으로 들었던 노래보다 실제 현장에서 듣는 음악이 더 가슴에 와닿았으니까.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 똑같은 노래를 다시 들었는데 아까만큼의 느낌은 아니더라. 풋풋하고 신선한 소년의 느낌. 오늘 노리플라이의 느낌이었다. 공연내내 나도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의욕이 불끈불끈 샘솟았다. 풋풋하고 신선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의 노래를 들었는데 왜 내 맘속에는 창작욕이 생겼는지는 모를 일이다. ㅋ


5. 2,3,4번의 공통점은  따뜻하고 기분 좋은 순간이다. 요즘은 그런 순간들이 많다. 겨울이니 따뜻한게 참 좋구나. 아 참. 새로 산 내 노키아 5800도 참 따뜻하고 기분 좋다. 착한 전화기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