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절정 백수로 보내던 겨울이 이제 다 끝나간다.

2010. 2. 18. 01:36daily

2010, 대관령

1.
오늘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생각났다. 아 이제 2월 17일이 지나가고 있으니 이제 겨울이 다 끝나가는구나. 이제 조금만 있으면 봄이 오겠구나. 그러고보면 언젠가부터 점점 해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고 해떠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깐. 겨울인 가고 봄이 오고 있어.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내 생일이 있지. ㅋ.ㅋ.ㅋ.ㅋ.ㅋ.ㅋ.ㅋ.ㅋ.


2.
겨울방학을 시작할때 내 나름대로 거창하게 몇가지 계획을 세웠다

- 기타 배우기
- 플래시 배우기
- 포토샵 마스터하기
- 동영상 편집 마스터하기 (프리미어 or 베가스)
- 정처없이 떠돌며 사진 많이 찍어보기 (특히 새로 생긴 아빠백통으로 열심히 찍어보기)
- 그럴싸한 수업용 스프링노트 제작하기

이중 지금까지 이뤄진건 지난주부터 홍대에 있는 기타학원에 등록해서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는 것 한가지밖에 없는듯하다. 타이핑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왼쪽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한 느낌을 받는다. 이제 살짝 아픈듯도 하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네.

이 이외에 나머지 내가 배워야할 수많은 것들은 결국 내 백수놀음속에 모두 사라져버리고 어느덧 방학은 이제 겨우 2주밖에 남지 않았다. 남들은 지겨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길 기다리겠지만, 교사들에게 봄이란 마냥 반가운 따뜻한 느낌이 아니라 이제 다시 속박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슬픈 현실인 것이다.


3.
요즘은 새우깡에 심취해있다.
쥐새우깡 사건 이후로 매출이 급감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나야 그런거 별로 신경안쓰는 사람이고, 예전 새우깡을 먹는 중딩 문종이후로 오랫만에 새우깡에 심취해있다. 쥐새우깡 사건 이후로는 짠맛이 덜해져서 나에게는 더 괜찮은 느낌. 그래서 오늘도 집에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새우깡 한 봉지와 500미리 캔맥주 두개를 까만 봉지에 담아와서 지금 몽땅 다 섭취했다. 아하. 조쿠나


4.
새삼스레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본다.

인간관계가 아주 심하게 좁은 사람이라 평소에 만나는 사람은 한자리 숫자다. 가장 사랑하는 여친님, 대학교 선배,후배,동기로 이뤄진 교사 침목모임 SF멤버들 4명, 학교에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동료교사 두명, 고등학교때부터 얇고 길게 인연을 이어 가고 있는 고딩 동창 친구 한명. 이렇게 8명의 인연말고는 내가 만나자고 연락하지도 않고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바로 간다고 얘기하지 않고 일단 생각을 해 본후에 만나게 된다.

이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재미삼아 잘난척을 한다. 지금의 나를 잘난척하며 포장하는거지. 나는 여타 남자처럼 속물도 아니고, 마초기질도 없고, 지나치게 남성적이여서 답답하지도 않고, 그렇고 지나치게 여성적이라 부담스러운 스타일도 아니다. 사진을 10년째 찍고 있고, 적당히 예술에 대한 관심도 많고 충분히 이해하려 드는 성격이라 얘기도 잘 통하는 편이다. 뭐 대충 이런식의 자랑집을 하면 뭐 나랑 오래 알고 있던 편한 사람들이야 이자식 또 시작했꾼. 이라는 눈빛을 보내며 적당히 받아주는 편이다.

이게 진짜 나일까 하고 오늘 술김에 한번 생각해본다. 이게 진짜 나라면 난 이런 내가 정말 맘에 드는지도.
오늘 새벽 4시에 잠들어 오전 11시반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오후내내 방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을 죽이면서 갑자기 극도의 의욕상실증이 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은 상태. 난 쓸데없는 것에도 집중을 잘 하는 편이라 늘 뭔가 해야할 일거리를 만들고 그거에 집중하는 편인데, 오늘 오후에는 이상하게 이것저것 다 싫어졌다. 내가 지금 뭘 해야하는지 생각하기 너무 싫었던 시간. 하고 싶은건 지금 생각나지 않고, 해야할 일들만 잔뜩 생각나는 짜증나는 상태. 오늘 오후에 그랬지. 그렇게 허무한 상태가 나일까.


5.
이런 엉망인 상태였지만 저녁어 홍대에 가서 정신없는 기타교습소에서 기타연습을 하고 진도를 쑥쑥 빼고 선생님한테 칭찬 몇번 받고 나니 축 쳐진 느낌이 싹 사라졌다. 난 참 단순하단 말이지. ㅋㅋㅋㅋ 그리고 여친님을 집에 데려다 주고 집에 가는 길에 펑펑 내리기 시작하는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했다가, 짜증났다가. 무기력했다가, 의욕이 넘쳤다가 왔다갔다하는 31살의 201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