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2011. 11. 30. 22:24daily

2011, 당산동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분이 이상하게 꾸리꾸리한 날.

요즘 내 블로그 - 10년전부터 이어온 홈페이지 를 처음부터 읽어본다. 한 아이에게 내 블로그를 소개시켜주며 겸사겸사 내가 예전 사진과 글을 들여다보고 또 예전 생각을 많이 하고 예전 얘기를 많이 한다.

예전에 많이 했던 생각이 나란 어떤 성격의 인간이며, 이런 나를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그런걸 생각이나 하고, 신경이나 쓰냐고 생각하겠지만, 생각은 하고 대신 신경은 안 쓰는 편이다.


오늘은 오전부터 교실을 정리하다는 노가다작업을 했다. 기존에 52석인 컴퓨터실을 45석으로 줄이면서 책상배치를 바꾸고 기존에 엉망으로 되어있던 각종 케이블들을 타이로 묶어 깔끔하고 나중에 청소하기 쉽게 하는 작업. 3시간동안 목장갑 끼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무거운 책상을 들고 옮기며 힘좀 썼다.

몸을 열심히 움직인 날엔 기분이 상쾌해져야 하는게 정상이거늘, 점심 무렵 짜잘한 설화로 인해 기분이 잡쳐버렸다. 그리 기분이 나쁠만한 일은 아닌데 이게 묘하게 마음을 톡톡 건드리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성격의 일부분을 자꾸 건드린다. 지금까지는 나는 이러이러한 인간이니 남들이 나를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건 아무렇지 않아 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충분히 그렇게 지냈는데 오늘은 갑자기 발끈~해버렸다.


아무튼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저녁에는 시장 한 복판에 있는 허름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고깃집에서 (무려 이름도 풍성식당!) 정말 기막히게 맛있는 목살을 먹으며 회식을 했다. 이빨이 심하게 아파 고기를 먹기가 힘든데도 맛있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은걸 보면 정말 맛있는 곳인것같다.

고기를 먹고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는 버스. 분명 나한테 오늘 기분나쁠만한 일은 별로 없었는데 계속 기분이 나쁘다. 요즘 내가 늘 훈계하거나 있는척하는 입장이 되어 나란 인간은 이렇게 역경을 극복했고 나로써 잘 살아가고 있어~ 라며 자랑하듯 말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런 척이 안 먹히는 날. 집에 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오랫만에 때까지 박박 밀어봤지만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래봐야 내일이면 또 별 생각없이 살것이지만, 지금 이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아서 쓰는.
기껏 몇달만에 쓰는 넋두리 포스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