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 자전거 이야기

2012. 4. 12. 23:23bike

잠들어 있던 블로그를 살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요즘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것같다. 내가 지금 나로 완성된건 2000년대 초반인것같다. 대학교를 다니며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서 혼자 심각한척도 많이 하고, 이리저리 혼자 돌아다니기도 자주하고. 



2001, 낡은 티셔츠와 내 친구 두놈 같이 스캐너에 넣고 돌리다.


그런 나에게 딱 어울리는 취미는 사진이었다. 그게 2001년이었나? 당시에는 해피캐스트라고 목소리 이쁜 아마츄어DJ들이 진행하는 온라인 음악방송을 일하면서 많이 들었는데 그 방송에서 DJ가 갖고 싶다고 했던 카메라가 로모였다. 회사를 다니며 받은 첫 월급으로 246,000원짜리 로모를 신품으로 구입해서 혼자 돌아댕기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사자도 몰랐지만 인터넷의 이런저런 강좌도 찾아보고 혼자서 책도 몇권 사보고, 지금의 나랑은 참 안 어울리지만 로모유저들의 모임에도 몇번 얼굴을 비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벌써 13년째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고, 어느덧 올 2학기에는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디지털사진 이라는 과목을 수업하게 되었다. 잘 할 수 있으려나. 나같은 야매사진가가. -_-


서론이 길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0년전부터 내 취미는 사진이었고, 또 하나의 취미는 자전거였다. 어릴 적부터 누구나 자전거를 타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곤 했던것같다.


내 인생 첫 자전거는 국민학교 4학년때였다. 사달라고 한적도 없었는데 아부지가 어느날 자전거를 떡하니 사다주셨다. 자전거 타는 법도 안 가르쳐주시곤 야 이거 타라~ 라고 던져주셨다. 난 그걸 끌고 나가서 집앞 오르막으로 끌고 올라가 무작정 타고 내려왔다. 당연히 넘어졌고 한 두번인가 그렇게 반복하고 나니 어느새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구글에서 퍼옴. 당연히 이 자전거는 아니겠지. 내 자전거는 연두+연분홍색이었던것같다.


이 자전거로 동네 여기저기 참 많이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왜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자전거를 타고가다 길에 맨홀 뚜껑이 있으면 그 위로 꼭 지나갔다. 마치 맨홀뚜껑을 수집하는듯이. 초등학생이기에 자전거 이동반경은 동네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나의 자전거 인생의 시작.


이 자전거는 어디로 갔을까? 당연히 도선생이 가져갔지. 당시 우리집은 목욕탕을 하고 있었는데 아부지가 자전거타고 그냥 집앞 골목에 세워두셨다. 누가 훔쳐가겠냐~고 큰소리를 치시면서. 당연히 다음날 아침에 자전거는 없어지고 말았지. 내가 그랬다면 아부지한테 무지 혼났겠지만 아부지 본인이 저지르신 일인걸 어쩌겠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이후 한대의 자전거를 더 샀던것같다. 당시는 사진을 많이 찍던 때가 아니라 아쉽게도 자전거 사진이 남아있진 않다. 



고등학교때는 학교랑 집이 전철로 두정거장 거리여서 종종 자전거로 등교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경인국도 인근 큰 전철역 앞에는 미성년자가 출입할 수 없는 골목이 있었다. 지금은 영등포나 용산역 앞에만 남아있지만 당시에는 부천역앞에도 저녁 6시 이후로는 미성년자의 출입이 금지된 골목이 있었다. 아침에 학교가는 길에는 재미삼아 그 골목 안을 자전거로 지나가기도 했다. 뭔가 금지된 일을 하는 듯한 묘한 쾌감과, 한산하면서도 스산한 그 골목의 기운이 생각나네.


방학중 자율학습때문에 학교를 매일 갔었는데 한번은 동네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포장해서 가방에 넣고 학교로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햄버거를 사랑하는 초딩 입맛은 어디 가지 않으니깐. 그런데 30분정도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었더니 가방에 검은색 콜라가 흥건했다. 햄버거를 포장하면 당연히 음료에 뚜껑을 덮고 뚜껑이 빠지지 않게 테이프를 붙여줘야 하는데 직원이 깜빡하고 테이프를 안 붙여준거다 그 상태로 가방에 햄버거세트를 넣고 자전거를 탔으니 가방에 콜라홍수가 났지. 당시에 내가 정말 아끼던 파나소닉 워크맨(뭔가 어감이 이상하다. 워크맨은 소니여야 할것같은데)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이걸 수리하려고 용산전자상가를 5번인가 왕복했는데 맹물도 아닌 콜라는 제거가 힘들다는 사망판정을 결국 받고 말았지.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부천시립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했다는 표현이 약간 민망할 정도로 6시간을 도서관에 있다면 그중 2시간만 공부하고 1시간반 농구하고 1시간 자고 1시간반 잠을 잤지.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친구놈을 뒤에 태우고 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내 뒤에 탔던 그놈 그때도 무지 덩치가 있는 놈이었는데, 게다가 도서관은 언덕의 꼭대기에 있었는데 내가 어려서인지 힘이 있었네. 




2001, 여의도


다시 시간은 흘러 대학교시절. 이제 드디어 로모로 찍은 자전거가 나온다. 접는게 굳이 좋은 이유도 없는데 접히는 자전거라고 자랑스럽게 타고 다녔던 아이. 이 녀석은 나름 정이 많이 가는 녀석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내 인격이 형성된 2000년대 초반에 나와 함께 한 자전거이기때문에.


위 사진은 혼자서 객기를 부리며 부천에서 한양대까지 12월 한겨울에 자전거 타고 가다 찍은 사진이다. 이날 너무너무 추워서 손발이 꽁꽁 얼고 나중에는 머리까지 아팠는데 왜 굳이 자전거를 끝까지 타고 갔는지. 이땐 이런 똘아이짓을 참 많이 했다. 한양대까지 자전거를 타고가서 과방에 자전거를 던져두고 퀴퀴한 냄새나는 쇼파에 누워 낮잠 한숨 자고 다시 집에 오는 그런 쓸데없는 짓도 가끔 했다. 인생 자체가 잉여였던, 그래서 어찌보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지 모를 그 시절. 


짧게 쓴다는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다음 이 시간에는 내 첫 자전거여행. 서울에서 땅끝마을까지의 하이킹 이야기를 해보겠다. 기대하시라. ㅋㅋ